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다니엘 모더 줄리아 로버츠 남편 결혼 남자 나이 프로필 오빠 조카

- 언론에 소개된 그녀의 과거 사건들 ㅠㅠ


유부남 약탈왕'이라는 별명을 얻은 할리우드 배우 줄리아 로버츠의 충격적인 사생활이 공개됐습니다.

지난 2022년 8월 8일 방송된 MBC에브리원 예능 프로그램 '장미의 전쟁'에서는 줄리아 로버츠의 스캔들이 공개됐습니다.

줄리아 로버츠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성으로 5번이나 선정된 것은 물론, 영화 한 편의 출연료가 2000만 달러(한화 약 260억원)인 '2000만 클럽'의 배우로 최초 선정된 여성이었다. 미모, 연기력, 흥행력까지 모두 갖춘 줄리아 로버츠가 출연한 영화의 흥행 수익만 총 한화 2조원 이상이랍니다.


그러나 만인의 연인이었던 줄리아 로버츠는 수많은 남성들과 스캔들에 휩싸인 '스캔들 메이커'였다고 해 충격을 안겼다.

줄리아 로버츠는 16살 차이의 리암 니슨, 영화 '귀여운 여인'에 함께 출연했던 리차드 기어, 미국 시트콤 '프렌즈'의 챈들러 역을 맡은 매튜 페리, 함께 파파라치에 포착됐던 에단 호크 등과 스캔들에 휩싸인 바 있답니다.

줄리아 로버츠는 이들 뿐만 아니라 수많은 유부남을 만나며 '유부남 약탈왕'이라는 별명까지 얻게 됐다고 해 충격을 안겼답니다. 줄리아 로버츠는 20대 초반 결혼 3년 차에 2살 딸까지 있던 유부남 키퍼 서덜랜드와 만난답니다.

줄리아 로버츠는 그가 유부남이라는 사실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개의치 않았고, 영화 촬영이 끝나고 집에서 항상 사랑을 나눴다. 결국 키퍼는 이혼 후 줄리아 로버츠와 약혼하지만 끝내 파혼하고 만다.

서덜랜드는 유명 미국 드라마(미드) '24'의 주인공으로도 국내에 잘 알려졌다.

이후 줄리아 로버츠는 키퍼의 절친 배우인 제이슨 패트릭과 연인으로 발전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오래 가지 못했고, 첫 데이트 후 19일 만에 가수 겸 배우 라일 로벳과 결혼하지만 장거리 부부 생활을 이유로 이혼한답니다.

이혼 직후 줄리아 로버츠는 배우 다니엘 데이 루이스와 사랑에 빠진다. 당시 다니엘은 프랑스 국민 배우 이자벨 아자니와 사실혼 관계였답니다. 심지어 당시 이자벨은 다니엘의 아이를 임신 중이었으나 다니엘은 미국 뉴욕에서 줄리아 로버츠와 시간을 보냈다. 줄리아 로버츠가 계속 집에 못 가도록 잡았다는 설도 있었답니다.


결국 다니엘은 임신 중이던 이자벨에게 팩스로 이별을 통보했다. 그러나 줄리아 로버츠와 다니엘의 관계는 1년도 못 갔다.

이후 커리어에 전념하던 그녀는 2000년에 유부남이었던 카메라 감독 대니 모더와 사랑에 빠진다.

줄리아 로버츠는 유부남임에도 대니 모더에게 적극적으로 대시했고, 당시 대니 모더의 아내, 메이크업 아티스트 베라는 임신 중이었다.

줄리아 로버츠는 두 사람이 헤어지게 하기 위해서 본인의 유명세를 이용했다. '저급한 베라'라는 글이 적힌 티셔츠를 직접 제작해 입고 다니다가 파파라치에 포착됐고, 이에 충격을 받은 결국 베라는 유산했답니다.

베라는 줄리아 로버츠를 용서할 수 없다며 "줄리아는 남편 도둑"이라고 비난하지만 그와 이혼한 대니 모더와 줄리아 로버츠는 결혼한답니다.

줄리아 로버츠는 자신이 다른 여자에게 빼앗아온 연인이 반대로 다른 여자에게 빠질까 봐 전전긍긍하며 불안한 삶을 살았다고 한다. 남편을 감시하기 위한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계정을 만들어 남편과의 사랑을 과시했다고 한다.

줄리아 로버츠가 외도를 반복하는 이유에 대해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양재웅은 그의 불우했던 어린 시절을 짚었답니다.

양재웅은 "환경적으로 친부는 일찍 자리를 비웠고, 계부는 학대하는 사람이었기에 기댈 수 있던 사람이 없었던 것 같다"며 "절대로 버림받지 않을 수 있는 위치, 빼앗는 자의 위치에 있고 싶었던 것 같다"고 분석했답니다.

- 그녀의 과거 생애 경력 이력

지난 1990년대~2000년대 할리우드를 휩쓴 톱배우이자 슈퍼스타로 1967년 조지아 주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 꿈은 수의사였으나, 저널리즘을 공부했다. 그 후, 뉴욕으로 이사해 1987년 본격적으로 연기를 시작했다. 10년 이상 배우로서 길을 걸어온 오빠인 에릭 로버츠 영향도 컸지만 오빠는 90년대 와서 그냥 그런 저예산 단골배우로 활동 중이랍니다.

귀여운 여인으로 슈퍼스타가 되기전에 줄리아는 떠오르는 신성 연기파 배우였다. <스틸 매그놀리아>에서 신인으로 믿기 힘든 탁월한 연기로 골든글로브 여우조연상 수상,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에 올랐다.


이후 1990년에 리처드 기어랑 나온 영화 <귀여운 여인>이 제작비 40배가 넘는 경이적인 흥행 대박을 거두며 23살 나이로 일약 할리우드 탑스타가 되었답니다.

 

전형성을 띈 신데렐라 스토리의 로맨스 영화지만 줄리아 로버츠의 시원한 미소와 밝고 명랑한 매력으로 관객들에게 큰 어필을 했고, 단숨에 전세계적인 스타가 되었다. 그 다음 해에 나온 스릴러 <적과의 동침>도 흥행과 비평에서 성공했고 스티븐 스필버그가 감독한 <후크>에서 팅커벨을 연기하기도 했다. 1993년에는 덴젤 워싱턴과 나온 <펠리칸 브리프>도 흥행에서 성공했답니다.

1997년 그녀의 또 다른 로맨틱 코미디 대표작인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은 4000만불의 제작비로 3억불의 성적을 기록하며 북미, 전세계 그 해 박스오피스 탑10을 기록하였다. 이 작품은 아직도 줄리아 로버츠하면 세손가락 안에 드는 작품이며 그녀의 출연만으로 박스오피스 흥행을 담보할 수 있는 대체불가한 스타 배우로 만들어주었답니다.1998년 수잔 서랜든과 출현한 <스텝맘> 또한 1억 달러 흥행을 하며 꾸준한 티켓 파워를 과시했답니다.


1999년에는 귀여운 여인 감독 게리 마셜, 리처드 기어와 다시 만난 로맨틱 코미디 <런어웨이 브라이드>도 세계적인 대박을 기록하였다. 그리고 줄리아 로버츠 하면 떠오르는 명작인 휴 그랜트랑 나온 <노팅 힐>도 초대박을 거둬들이며 줄리아 로버츠를 헐리웃 대표 여배우의 자리를 공고히 하고 이후 <에린 브로코비치>를 통해 여배우 최초로 2000만불을 받았답니다.

 

아울러, <모나리자 스마일>에서는 2500만불을 받아 당대 최고 대우를 받았다. 오션스 시리즈에도 출연하여 스타 군단 캐스팅을 완성하며 영화의 흥행에 일조하였답니다.

물론 <아이 러브 트러블>이라든지 지킬 박사와 하이드를 여성의 눈으로 본 영화 <메리 라일리>는 흥행에 실패했듯이 몇몇 실패작도 있긴 하다. 그래도 연이어 대박을 거둔 장르가 로맨스가 많다보니 가벼운 로맨스 전문 배우라는 인식이 싫어서인지 마이클 콜린스에 나오기도 하고 스티븐 소더버그가 감독했으며 실화를 모델로 한 영화 <에린 브로코비치>에 출연하기도 하였답니다

 

이런 영화는 여성 원톱 드라마 장르임에도 북미 1억불, 월드 2억불을 돌파하며 흥행에 성공했고, 이를 통해 2001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여 자신의 연기 경력 최고의 순간을 만끽했다. 이 때 기분이 좋아서 감정을 주체 못하고 웃는 수상 소감은 아직도 회자되고 있답니다.

꾸준히 연기활동을 하고 있지만 2010년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이후 영화들이 연이어 기대 이하 흥행을 보이고 있다. 그렇다고 쫄딱 망한 건 아니고 그냥 본전치기 정도나 기대에 못 미친 흥행이 많다는 것. 더불어 틈틈이 TV 드라마에서도 모습을 보이고 있기에 2014년에는 드라마 <노멀 하트>에 나왔답니다.

2013년에 메릴 스트립과 출연한 <어거스트 가족의 초상>으로 2014년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조연상 후보에 오르는 등 큰 호평을 받았다.

2017년 영화 <원더>로 호평과 함께 간만에 1억 달러 흥행작를 만들어 냈습니다.

2019년 미스터리 드라마 <홈커밍> 시즌1에서 주연을 맡았답니다.